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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대란을 세계 속의 롤모델로 반전시켰다.


2007년 10월, 일본의 NHK가 양천을 찾았다. 11월에는 영국 BBC 방송 뉴스 제작팀이 양천구에 나타났다. 쓰레기를 촬영하러 온 것이다. 물론 악취가 진동하고 흉측한 모습의 쓰레기가 아닌 양천구가 새롭게 탄생시킨 쓰레기를 촬영하고자 방문한 것이다.

2002년 양천구청장에 취임하자마자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닌 진물이 질질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였다. 인연치고는 기가 막힌 인연이란 생각을 했다.

목동 소각장 인근의 주민들이 소각장에 반입된 음식물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로 반입을 금지 시켜 양천구내에 1천 5백여 톤의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주민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동안 속아 온 경험 때문에 주민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불가능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3개월 만에 음식물쓰레기 100%분리수거를 달성했고 전국이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를 시행하게 하는 초석을 만들었다.

양천구의 음식물쓰레기 정책을 배출에서부터 수거, 재활용, 재활용물의 최종 사용처까지 모든 과정을 심층 취재해 간 NHK는 그 내용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뭇타이나이’라는 프로그램에 방송했다.

저녁 뉴스시간 특집 프로그램으로 ‘세계 각국의 쓰레기 처리 실태’를 소개하기로 했는데,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 양천구가 생활쓰레기를 가장 잘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취재를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양천구의 환경정책, 그것은 구청장과 공무원, 그리고 양천주민들이 각본부터 연출, 연기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낸 로컬거버넌스가 추구하는 가치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미래에 대한 투자에 열정과 혼을 담았다.

 

청소년 유해 업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몇날 며칠을 잠복근무까지 한 구청장이 있었다면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이 미래를 준비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우선의 책무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그래서 당장의 성과 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에 중시해야 한다.

양천은 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교육에 관한한 서울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던 양천은 초. 중학생을 둔 학부모들의 로망이 되었다. 지난 2008년 특목고 진학률 상위 5개 학교가 양천에서 나왔다. 이 기록은 2010년 서울시내 외고 입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특목고 졸업생의 70% 이상이 소위 SKY대학에 진학한다. 양천에 있는 중학교에 가면 유명대학을 간다는 등식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양천이 학부모들의 로망이 된 것은 그냥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장시간의 노력이 빛을 본 결과다. 그 중 하나가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여건과 학부모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낼 수 있는 환경이다.

양천구에는 나이트클럽이 없다. 숙박업소 역시 오래전 들어선 업소가 몇 개가 있을 뿐이다. 영등포구나 강서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휘황한 네온사인을 발하는 업소는 양천에서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학부모들의 로망이 된 곳 양천, 추재엽이 한 몫 했다면 무리한 주장일까?

상습수해지역 양천구를 항구적 안전지대로 바꾸다.

 

지난 7월 27일과 28일 이틀간 내린 비는 100년만의 폭우라고들 한다. TV화면에 비친 우면산 산사태와 강남역 침수 장면은 아직도 온 몸을 진저리 치게 한다.

2002년 7월, 구청장에 취임한지 한 달 남짓 한 시점으로 기억한다. 안양천 둑을 거침없이 넘어 온 흙탕물은 안양천 주면 지역을 초토화 시켰다. 현장에 남은 흙탕물은 점액질의 흉측한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점액질의 괴물보다 나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초점을 잃은 채 먼 하늘만 응시한 채 굳어 버린 피해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지난 27일 28일 수해로 넋이 나간 서울의 모습을 보면서 진저리를 친 이유다.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적지 않을 정도로 홍수기 안양천은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피해 복구가 끝나갈 즈음, “물 피해를 근절하려면 양천구가 감당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 방법은 없는 걸까? ” 이런 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쳤지만 내 가슴은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다. 더 이상 먼 하늘을 응시한 채 굳어 버린 주민들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결국 큰 집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에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아양을 떨기도 했다. 880억이란 엄청난 돈을 서울시로부터 뺏다시피 해 가지고 왔다.

 

그 돈으로 목동운동장 옆 신정 1빗물펌프장 증설공사, 오목교 옆의 신정3 빗물펌프장 기능개선 공사. 신정1동 간이빗물펌프장 신설공사. 대규모 하수관로 신설공사다. 이것이 양천구의 항구적인 수방대책을 위한 4대 사업이고 100년만의 폭우에도 견디어 냈다.

내년, 후년 아니 백년이 흐른다 해도, 폭우 속에서도 평온한 잠을 잘 수 있는 양천을 기원한다.

2011년 8월 어느 날, 춘천에서 양천으로 돌아오는 길에...